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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의 인가와 인증 눈에 뜨이는 정보

미국 대학의 인가와 인증
 
허위 학력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단골처럼 따라오는 것이 유명연예인, 국회의원, 기업 CEO가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미국 비인가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는 정말 비인가 유령대학이 많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허위 학력을 기재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하지만 외국 대학, 특히 미국 대학의 시스템을 잘못 이해한 탓에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설립된 대학을 비인가 대학으로 몰아붙여 결과적으로 그 대학 졸업생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도 옳지 않다.
 
미국은 50개의 주로 이루어져 있고 주마다 법이 다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주(State)는 각각 독립 국가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지방자치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다. 캘리포니아 한 주만 하더라도 남한 국토의 몇 배가 될 정도로 광활하고 경제 규모도 세계 7대 경제 대국 수준이다. 

미국대학의 인가는 주정부에서만 이루어지고 연방 정부에서 인가를 담당하는 기구 자체가 없다. 이런 시스템을 정확히 모른 채 한국에서는 미국 주정부에서 인가된 대학을 ‘비인가’ 또는 ‘무인가’로 둔갑시키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정부에서 인가 받은 대학을 인증하는 기관이 셀 수 없이 많다. 대학 설립이 자유로운 것처럼 인증기관의 설립도 자유롭다. 다만 연방 교육부는 인증기관을 추천해주고 있는데 CHEA(Council for Higher Education Accreditation, 고등교육평가인증협의회)가 그 중 대표적인 곳이다. 그런데 이 기관은 사설기관이고 이 인증기관에 꼭 가입해야 한다는 법적인 의무 조항이 없다. 

일반적으로 인증기관에 가입하면 좋지만, 인증기관에 들어간 대학 가운데 그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뒤처지는 학교들도 적지 않고 이곳에 가입하지 않는 대학 가운데 미국 내에서 명망 있는 대학들도 없지 않다.
 
미국에서 대학의 탄생은 일단 주정부의 인가가 시발점이 되는데, 인증기관 가입이 설립 직후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몇 년에 걸쳐 그 실적을 평가받아 이루어지기에 설립 초창기 대학들은 대부분 주정부 인가대학 형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미국 주정부에서 대학 ‘인가’를 영어로 표현하면 ‘approval’ 혹은 ‘license’ 라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말로 ‘인가’라고 번역된다. 또 미국에는 수많은 자생적인 ‘accreditation institution’(인증기관)이 있다. 이때 ‘accreditation’은 ‘인증’이란 뜻인데, ‘acquire’와 ‘credit’의 합성어로 신용획득, 즉 신용을 쌓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런데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accreditation’이 우리말로 ‘인가’로 풀이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사전적 의미에 얽매이다 보면, 최근 언론이 미국에서 인가(approval 또는 license)는 받았지만 인증(accreditation)은 받지 못한 대학을 뭉뚱그려서 ‘비인가’ 또는 ‘미인가’ 대학으로 지칭하는 것처럼, ‘approval’ 혹은 license’와 ‘accreditation’을 모두 ‘인가’라는 의미로 쓰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따라서 ‘accreditation’을 받지 않은 대학은 ‘미인증’ 또는 ‘비인증’ 대학으로 부르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지역 및 전공 등에 따라 수많은 인증기관이 있고 그 인증기관에 소속되면 가입 대학 간의 자유 협약에 따라 학점 교류 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정부 추천 인증기관에 가입된 대학은 학생들이 대출을 받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인증기관에 들어가 있지 않는 주정부 인가대학의 학점이 미국 전체 대학에 인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고 대출을 못 받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공산품이 KS를 받으면 우수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KS를 안 받았다고 해서 모두 제품이 나쁜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대부분의 언론이 CHEA에 가입하지 않으면 ‘비인가’라고 하고 있는데 CHEA의 홈페이지에는 정작 이곳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도 대학을 인정한다고 나와 있다. 
 
나라마다 대학의 역사와 교육제도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가령 필리핀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대학을 진학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만의 잣대로 이런 필리핀 대학생을 부정 입학생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도 학점은행제, 학사고시, 개방대, 통신대, 사이버대학 등 대학 졸업 학위를 인정하는 제도가 다양하다. 100여 년 전엔 이 땅에 근대적 의미의 대학제도 자체가 없었다. 전 세계 각국의 대학제도가 상이하고 이것을 수용하는 제도적 틀도 각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 주정부 인가대학의 졸업생들이 한국에도 많이 있다. 이들은 요즘 비인가 유령대학을 나왔다는 언론의 여론몰이로 인해 심대하게 명예를 훼손당하고 있고 더러는 좋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있다. 아이비리그만이 대학은 아니다. 최근 허위 학력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일부 미국의 주정부인가대학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학력 위조는 아예 입학 또는 졸업을 하지 않은 학교를 다닌 것처럼 거짓으로 날조한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미국의 대부분의 주정부인가 대학들은 주정부인가를 받고 정상적으로 학사가 운영되고 있으며, 다만 민간 인증기관의 인증을 받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 이런 이유만으로 미국 주정부 인가대학을 ‘미인가’ 또는 ‘비인가’ 대학으로 몰아붙이고, 이들 대학의 졸업생을 범법자처럼 취급하는 것은 중세의 마녀사냥과 전혀 다를 바 없다.
 
학력을 부풀려 이익을 편취하는 것은 그 누구라도 비난 받아 마땅하다. 대학이 학위장사를 해 남발하는 행위는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미국 등 세계 각국의 서로 다른 교육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정상적으로 해외 대학을 졸업한 사람까지 매도하는 것은 선진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서 분명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국제화 시대에 남의 문화와 제도를 꼼꼼히 따져보고 이해하는 것이 국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또다른 바로미터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